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알려드립니다

자료
<언론보도> 한국 사회복지관의 효시
작성일
2011-04-14 09:39
한국 복지회관의 효시… “전쟁폐허속 발전 이룬 코리아 사랑”
1954년 태화복지관장 맡았던 페기 빌링스
 
“엄청난 변화를 이뤄낸 한국을 보니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한국을 사랑합니다.”

6·25 전쟁 후 폐허 속 한반도에서 소외층을 위해 헌신했던 페기 빌링스(여·82)는 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빌링스는 지금으로부터 57년 전인 1954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사회복지회관의 효시’라고 평가받는 태화복지관 운영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복지관에서 소외층을 위해 야학을 개설하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일터로 나서야 했던 여성들에게 직업상담소 역할도 자처했다. 또한 전쟁으로 불구가 된 사람을 병원으로 옮겨주고 일자리도 찾아줬다. 10년 동안 복지관장으로 애정을 쏟았던 그가 ‘태화복지재단’ 창립 90주년 행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빌링스는 “마음속으로 항상 한국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냈다. 특히 빌링스는 어려웠던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감격해했다. 당시 그는 전쟁 후 복구가 시급했던 복지관을 맡아 복지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발전해가는 한국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 심정은 너무 너무 행복하다”며 “어려운 시기에 한국에 왔고, 어려웠던 한국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변영숙’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받은 빌링스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상 등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간 북미한국인권문제연합회장을 자임해 미국과 캐나다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꾸준히 알리기도 했다.

빌링스는 이날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재단 창립 9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오는 20일 출국할 예정이다. 태화복지관은 1921년 선교사 마의수(매미 마이어스)가 ‘태화여자관’으로 설립해 소외계층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던 단체로 현재까지도 전국 42개의 시설을 통해 90년간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영주기자 everywhere@munhwa.com
* 기사원문보기

알려드립니다